| 31 | [* 어릴 적 나는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다. 왜 그렇게 답답한 갑주를 입으시냐고. 아버지는 내게 답하였다. 옥죄어 오는 것은 몸에 두른 무광의 철이 아니라, 자신이 헌신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의문과, 당장의 전투에서 날붙이에 찔려 나를 볼 수 없다는 인간적인 울음이라. 그 당시 아버지의 겨우 허벅지 높이였던 나는, 아직도 어디선가 터져나오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의 말씀을 머리로 이해할 때 즈음,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을 검은 적갈색의 찌그러진 갑주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그때가 나의 기사단 입단 며칠 전이었다. 나는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서도 끝내 기사단에 입단했다. 아버지를 동경했다는 감정은 알지 못했지만. 이렇게 활자들이 내 머리를 스치는 이유는, 마물의 손들이 내게 꼽은 식칼과 조잡한 농기구들을 빼냈기 때문일 것이다. 철붙이에서 비롯된 피는 금속에 차갑게 식어 의식을 일깨운다. 내 눈 앞의 땅에 박힌 희미한 빛이 나는 검을 뽑는다. 빛의 잔상이 허공을 스치는 듯하다. 몇 초 후 대여섯의 손이 잘려나간다.썩어갔던 모양대로. 마물의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점성의 유체의 검고 짙은 불균일 혼합물과 아래에서 뻗어 나오는 손들이 얼굴을 대신했다. 주변이 검은 팔로 뒤덮혔다. 앞의 장애물들을 치우자 더 멀리 있음에도 작아보이지 않는 개체가 두세 명을 붙잡고 있는 상황이 보인다. 허벅지에 박힌 작은 식칼이 걸음을 달릴 때마다 피를 쏟지만, 그건 상관없다. 피에 뜨거워진 바람이 나를 스치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에 뒤따라 찌르는 듯한 높은 괴성이 들린다. 둔탁한 갑주들의 추락음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절단면에서 다시 부패한 팔들이 펼쳐 나온다. 이런, 쓰러진 동료를 뒤로 하고, 도약한다, 검을 그것에 꽂으려 하던 찰나, 귀에선 이명이 들려온다. 오래도록. ][* ….기사단 직속 병원에서 나의 첫 임무를 완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을 뜨자 내 옆에 놓인 보랏꽃이 보였다. 보랏빛이 동료의 붕대 핏빛보다 먼저 보였다. 창문에 비친 나는 미소를 짓지 않았다. 고작 몇시간을 누워있다 다시 기시단으로 복귀했다. 화관을 챙기진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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